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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 그 아름다운 패배의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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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혈색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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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10-06 08:44:42 조회: 1,640  /  추천: 5  /  반대: 0  /  댓글: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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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줄은 글 다쓰고 마지막에 추가한건데요, 글 겁나 길고 재미없으니까 대충 훑어보시고 관심 있는 분야가 나오는게 아니면 대충대충 넘기셔요 ㅎㅎ

 

 

 

좀 길어지더라도 오늘로 대충 마무리 짓기로 하죠. 저도 솔직히 이야기가 길어지니 재미진 글을 쓸 자신이 없네요 ㅎㅎ

 

읽으시는 분들도 재미없을 것 같고, 좀 자랑할만한건 이미 다 하기도 했구요 ㅎㅎ;;

 

 

 

저는 아버님이 군대 가기전 스무살때 돌아가셨습니다.(이게 제가 레이서 한다고 했을때 어머니가 펑펑우신 결정적 이유이기도 하죠. 남편 잃은지 얼마나 됐다고 아들까지...)

 

근데 솔직히 타인의 보는 눈을 의식한다던가 나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서 거짓말로라도 좋은 아버지였다고 하긴 힘듭니다.

 

제가 막 태어났을 때는 저희 할아버님께서 성냥 공장을 운영하셔서 꽤 많은 돈을 버셨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아버진 장남이었는데, 결혼 전부터 이래저래 말썽도 많고 집안 돈을 가져다가 꽤 말아드셨나봐요.

 

할아버지의 많은 돈은 그 반을 제 아버지가 말아드시고, 반은 성냥산업(?)의 몰락으로 자연스럽게...

 

그 덕에 숙부님들이 저를 보는 눈도 그리 곱지만은 않으십니다. ㅎㅎ;;

 

 

흔히들 "아들은 아버지의 등을 보고 자란다'라는 말들을 하잖아요.

 

확실히 어느 정돈 맞는 말인거 같은게, 저도 취미나 기호의 대부분은 사실 아버지한테 물려 받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못난 아버지라도 지금까지 살아계셨다면 제가 부양하더라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솔직히 있어요.

 

그야말로 애증의 대상인거죠.

 

아버지 역시 음악을 좋아하셨었고, 카메라, 자동차 ,오디오 다 좋아하셨었요.

 

어머닌 아직도 가끔 이야기 하세요.

 

"능력도 없는게 꼴값떤다"고. ㅎㅎ;;

 

 

제가 좋아하는 취미의 대부분은 아버지께 물려받은 것처럼 사실상 모든 제 취미에 대한 관심은 어렸을 때 한꺼번에 시작됐다고 봐도 무방하지 싶어요.

 

일요일 아침에 좀 늦게까지 자고 싶어도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아바"나 폴모리아"가 큰 볼륨으로 울리면,

 

아.... 짜증나게 진짜... 이러면서도 결국은 일어나서 집안 대청소를 해야했고,

 

한창 반항기때는 진짜 하기 싫은게 사진 찍히는 거잖아요. 근데 뭔 일만 있으면, 아버지의 카메라가 등장해서 가족 사진을 찍어야했어요.

 

이렇게 이야기 하면 뭔가 가정적이고 자상한 사람 같지만,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저렇게 하면서도 자기 좋은 못된 짓은 다 하고 다녔어요. 가정적인 척 할뿐입니다.(하아... 이런 이야기까지 해도 되는건가요 저?)

 

지금도 그 애증의 흔적들중에 남은 아버지의 물건은 라이카와 금성(지금의 LG)의 필름카메라 두대 뿐이네요.

 

 

각설하고, 타임테이블이 좀 꼬이는 듯 하지만 원래 제가 취미를 한 시기에 한가지만 하진 않았어요.

 

자동차 운전 배우면서 모형도 하고 무선조종도 했으며, 서바이벌 게임도 했죠.

 

학생 나부랭이가 그 돈을 다 어떻게 충당했냐고요?

 

학원비,신문대금,우유값등등은 원래 학교에 갖다주라고 있는게 아니라는걸 다들 아시면서~(나만 그런가?)

 

부끄럽지만 제가 한 짓이 있다보니 당시 어머니께선 꽤 걱정을 많이 하셨다고 해요.

 

다름이 아니라 제가 아버지를 닯을까봐서... 였죠.

 

 

 

대충 서두는 마무리 짓고, 당시 무선 모형은 "모형"이라는 취미를 하는 사람들에겐 "서바이벌 게임"과 함께 자연히 관심을 갖게 되는 이른바 "파생형 취미"였어요.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일본에 대한 적대적 감정이 범국민적으로 팽배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일본산 공산품에는 관대했어요.

 

아니 관대한게 아니라 동경했다고 보는게 맞겠네요.

 

일제 소니 텔레비전이나 조지루시(코끼리표)밥솥이 있는 집은 뭘 좀 아는 잘 사는 집이었고,

 

만년필은 몽블랑이나 라미는 알지도 못하던 시절, 미국의 파커보다는 일본의 빠이롯트를 더 쳐줬었죠.

 

미군 px에서 흘러나온 마크레빈슨의 당시 가격 200만원이 넘는 앰프를

 

"어서 듣도보도 못한게 앰프라고 까불고 있어" 하며, 당시 가격으로 50만원도 안되는 일본산 산수이 앰프와

 

맞바꿨다는 일화는 뭐 오디오계에서는 전설이구요.

 

 

무선 모형에서도 이런 분위기는 마찬가지였는데, 미국의 팀 어소시에이티드나 팀 로씨라는 모형메이커가 전세계의

 

거의 모든 대회를 휩쓸고 있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국내에선 타미야와 교쇼라는 일본산 제품들이 훨씬 인기가 많았어요.

 

심지어는 가격도 일본산이 비쌌는데, 전 돈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타미야나 교쇼는 손에 넣지 못했고,

 

저 또한 우매한 백성인지라, 상대적으로 싼 미국제 보다는 일제 rc카가 가지고 싶었죠.

 

 

그래서 구입한게, 일본 도쿄마루이라는 회사의 "사무라이" ㅋㅋㅋㅋㅋㅋ

 

지금이라면 의식있는 척이라도 하고 싶어서 저런 이름을 가진 물건은 절대 안샀겠죠.

 

하지만 당시에는 힘들게 삥땅치고 모은 용돈으로 저 차를 구입하고 정말 미친듯이 뛰어다녔어요. 좋아서.

 

당시 대부분의 rc카는 벨트드라이브나 샤프트 드라이브 구조가 대부분이었는데,

 

사무라이라는 차는 무슨 약을 빨았는지 체인 구동 방식이었어요.

 

체인이라는게 말그대로 쇠사슬이다보니 무선 모형에 사용하기에는 터무니 없이 무거운 구조였고, 당연히 빠르지도 않았죠.

 

대회에 나가서 쿄쇼나 요코모와 경쟁할만한 차도 아니었구요.

 

하지만 달릴때 나는 특유의 "착착착착착착~"하는 체인이 위아래로 튕기는 소음은 매력이 있었어요.

 

후에 이 차가 왠일인지 품귀현상이 벌어지면서 프리미엄이 붙어서 거래되더군요.

 

이 차는 20만원이 채 안되는 차였는데 당시 40만원 넘던 교쇼의 레이져라는 차와 비슷한 수준의 인기가 있었던

 

요코모의 슈퍼 독 파이터라는 50만원 넘는 차와 1:1교환이 될 정도로 값이 뛰었어요.

 

저는 당연히 교쇼나 요코모가 아니라 전부터 가지고 싶었던 타미야의 이글레스(나중에 4wd미니카로도 나오죠)로 누군가와 맞교환 하는데 성공합니다.

 

당시 이차 역시 40만원이 넘는 차였는데 대회에서는 그다지 환영 받지 못하던 차였어요.

 

현가장치와 코너링 성능은 좋은데 샤프트 드라이브 방식의 구조적 한계상 차가 무겁고 최고속도가 빠르지 않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래도 제가 동경했던 차인만큼 저는 그걸 연습으로 극복해서 중3때인가는 강북대회에서 학생부 3위에 입상해보기도 했죠.

 

그 후, 모터가 아닌 엔진구동방식의 rc카가 대유행이 되면서 저도 엔진으로 전향하게 되는데,

 

그 당시 엔진차는 10cc급과 20cc급으로 나뉘었어요.

 

10cc급은 모터차와 비슷한 크기였는데 20cc급은 훨씬 크고 아름다웠죠. 동경의 대상이었어요.

 

하지만 당시 가격으로도 100만원이 넘는 차값과 20cc엔진의 엄청난 힘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조향과 스로틀 조정을 위한

 

"서보"라는 부품을 포함한 부수기재들도 하이 토크와 고강성의 값비싼 물건이어야 했는데,

 

대충 한세트 마련하려면 적어도 200은 "발라줘야" 가능했습니다. 제 아무리 삥땅에 능한 삥테크 전문가라도 저 금액은 무리였죠.

 

거기에 가장 큰 문제는 연료값이었어요. 3~4리터 정도 됐었던거 같은데 한 통에 2만원 정도 됐었죠.

 

휘발유가 아니라 전용 연료를 사용했기 때문인데, 학교에 걸어다니거나 자전거로 통학하고 삥땅쳐서 모은 돈으로

 

구입한 차는 추가금이 들지 않는 선에서 중고거래를 해가면서 유지하는 가난한 무선레이서에게 끊임없이 소모품으로써 들어가는 연료비는 상당한 부담이었네요.

 

그렇게 서서히 자연스럽게 접게 됬지만, 지금도 헬기나 드론등엔 이상할정도로 관심이 없어도 무선 자동차라면 언제라도 다시 하고 싶어요.

 

하지만 갈등되는건 제가 즐길 당시의 무선 모형은 최고속도 45킬로를 넘기고 "마의 50킬로"를 넘기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알리에서 5~6만원만 주면 5~60키로 나간다는 차를 팔더군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바일벌 게임이야 당시 새로운 레져문화로 각종 매체에서 소개되던 시기였고, 그중 페인트 볼이란 게임은 미국에서 건너와 각지의 직장이나 단체의 연수등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세련되고 멋있는 사람들이 즐기는 선진 스포츠였어요.

 

동시에 일본에선 자신들의 공업력을 이용한 모형 총기가 크게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후에 우리나라에 어둠의 경로를 통해 들어온 "가스총"(괴한 퇴치용의 그것이 아니라 실총과 똑같이 만든 모형총)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초기의 물건은 총열 윗쪽에 비비탄을 쏟아넣고, 분리도 되지 않는 탄창 아랫쪽에서 가스를 충전한뒤 발사하는,

 

그나마도 몇발 쏘고 나면 가스가 소진되서 넣어둔 비비탄도 다 못쏘는 조악하고 유치한 물건이었지만

 

일본애들의 잉여력은 정신 나간 속도로 발전했고 나중에 아주 극소량의 가스로 블로우백이라고 하는,

 

총알이 발사된뒤 총열이 후퇴/전진하여 다음탄을 장전해주는 실제총과 똑같은 작동은 물론이요,

 

황동 탄피에 비비탄을 박아넣고 장전하고 쏘면 블로우백 작동시 탄피가 튀어나오는 신박한 물건까지 등장합니다.

 

 

이런 매력적인 물건을 세계 각지의 군사 모형을 다루던 사람들이 그냥 구경만 할리는 없었고,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 국내에 들여오게 되죠.

 

 

당시의 서바이벌 게임은 기존의 모형인들과 슬슬 쇠락기를 맞은 페인트볼게임에 매료되어 미처 포기하지 못한 일반인들이 유입되면서

 

일본식 서바이벌 게임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게 했고, 우리나라에 서서히 정착하게됩니다.

 

서바이벌 게임은 페이트볼의 총싸움 개념에 밀리터리룩이 아닌 제대로 된 군장을 착용해야한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어요.

 

물론 페인트볼에서 유입된 일반인 출신의 서바이벌게이머는 크게 상관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게임이 이루어지는 산에서는 당연하게도 위장복이 좋은 효과를 발휘했기때문에,

 

대부분의 이 일반인 출신의 게이머들은 자신이 군시절 입었던 군복을 다시 꺼내는 "촌극"이 벌어졌어요.

 

이게 왜 촌극이냐면, 아는 사람은 별로 없고 당시로써도 사실상 무의미했지만 "일반인이 군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게 불법"이었기 때문입니다.

 

군인사칭이나 간첩으로 오인받을 위험도 있었고, 의외로 당시엔 군복 자체가 좀 무섭고 위험한 물건이라는 인식같은게 있었어요.

 

밀리터리 룩이란것도 분명히 존재했지만, 지금의 그것과 비교하면 훨씬 세련되고(진짜로요)평상복에 가까운 디자인에

 

색상만 국방색이나 위장색이었지, 지금처럼 실제 군복에 한없이 가까운 그런 성격은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길은 있는 법, 군복을 입더라도 색깔이 들어간 야구모자나 운동화를 신으면 불법은 아니었고, 실제 게임에서도 이렇게 하는게 피/아를 구별하기 쉬웠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서바이벌게임팀의 복장은 이런식으로 운영됩니다.

 

물론 개중엔 전문적인 밀리터리매니아(밀덕)들이 있어, 영국군이니 미국군이니 말그대로 코스프레를 하고 나와서 총쌈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죠.

 

근데 이 밀덕이란게 의사나 전문직에 종사하는 꽤 돈이 있는 사람들이 하던 고급 취미이다보니, 당연히 저같은 사람은 끼기 힘든 팀이 많았습니다.

 

저 역시 동네에 아저씨들이 모여서 군시절 입었던 개구리복 꺼내입고 뛰어다니는 팀에 들어가게 되죠.

 

팀명은 "밤안개" ㅋㅋㅋㅋㅋ

 

당시 707출신의 군부심 쩌는 아저씨가 있었는데(당시엔 꼴불견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707만큼은 절대 까선 안되겠더군요 ㅋㅋ)

 

이 아쟈씨가 팀의 리더를 맡으면서 자신의 군시절 명찰이름

(실제로 이 쌍팔년도 이전의 옛 "고대" 군시절에는 훈련 나갈때 이런 유치한 가명을 오바로크 치고 다녔다더군요.) 으로 팀명을 지은겁니다.

 

그래도 당시엔 꽤 멋있다고 생각한게 다른 팀들의 이름은 "외로운 늑대들" , " 서울민병대" 뭐 이런 식이었으니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초창기엔 그저 10대10으로 싸워 적 전체를 섬멸하는 식의 게임만이 진행되다가, 소위 "캠핑 스나이퍼"란게 나오기 시작하면서

 

슬슬 전략이란게 등장할 때쯤 엄청난 충격을 받은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날은 분명히 10대 10으로 게임을 하기로 했는데, 상대팀이 9명만 들어가더군요.

 

그래서 니네 그래도 괜찮아? 했더니 응응 괜찮아~^^ 하더군요.

 

역시나 저는 항상 그렇듯이 초반광탈... 총과 함께 양손 머리위로 올린 뒤 필드에서 퇴장하여 전사자 대기소로 향하는데....

 

아니 글쎄 이 놈들, 무전기와 지도까지 동원해서 지휘소에서 전술지휘를 하고 있는거죠... 황당해서 말이 안나왔지만 이해가 되더군요.

 

그날 완전히 대패했거든요. ㅎㅎ스코어 10:1. 원래 총 잘쏘던 리더형님만 하나 잡고 전부 당한거죠.

 

이렇게 재미지던 서바이벌 게임도 나중엔 점점 타락하더니, 돈잔치가 됩니다.

 

강력한 무기를 원하는 소비자의 니즈를 장사꾼들이 그냥 놔둘리가 없고, 전동건이란 물건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탄창 한개에 비비탄이 300발씩 들어가는 태엽식 탄창이 나오고, 급기야는 "개틀링포"로 유명한 미니건까지 등장하더군요.

 

보통은 "한사람당 3~500발만 휴대가능"이라는 규칙이 있지만 이게 지켜질리도 만무하고,

 

그걸 일일이 세어보는것도 불가능한 만큼 이전부터 "적당히 들키지 않을만큼만 쏘고 나중에 쏜 비비탄 줏어올려면 고생하니까 알아서들 조금씩만 쏘자"

 

이런 불문율같은게 있었는데 미니건까지 등장해서 말뚝박고 엄청난 비비탄을 쏴대니 접근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전술의 재미는 떨어지고 산에는 비비탄 천지를 맹글어놓고 그걸 주워올 엄두가 안나니 그냥 방치하고...

 

거기에 강력한 무기라는 건 단순히 총알세례가 아니라 진짜로 강력한 무기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말그대로 불법개조가 이루어진 물건들이었습니다.

 

"파워개조"를 하는거죠. 원래의 모형총들은 실제 산에서 쓰려면 일정사거리 안으로 들어가야하고 바람등의 영향이 있다보니, 의외로 꽤 가까운거리까지 접근하지 않으면 명중하기 어려웠죠.

 

가까운 거리에서 맞아도 옷 위로 맞으면 상당히 따끔하긴 했지만 통상적인 피격거리에선 그다지 아프지도 않았고요.

 

또 이런 접근전과 약간의 고통이 게임을 더 재미있게 하기도 했구요.

 

하지만 불법개조된 총은 "난 보지도 못했는데 맞았다"에서 시작해서 급기야는 서울의 관악산 필드벌어진 모 팀간의 게임에서 비비탄에 볼 한쪽이 뚫리는 대형 참사가 일어납니다.

 

이렇게 기존 서바이벌게임 동호인들도 점점 재미를 잃어 빠져나가고, 몇몇 소수의 돈많고 비굴한 놈들때문에 서바이벌 게임계 분위기는 완전히 망가져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급기야 서바이벌 게임은 대중들에겐 민폐스포츠로까지 그 위상이 추락하게되고, 뉴스에서조차도 "서바이벌게임이 또..." 하는 뉴스가 빈번히 전파를 타게 되죠...

 

이렇게 취미 하나를 또 접게 됩니다.

 

 

 

글이 길어지니 대충 마무리 하자면,

 

포터블 음악기기는 요즘처럼 세련된게 아니라, 테이프가 들어가는거였고, 소니, 아이와, 켄우드, 빅터 등의 일본산 기기가 전부였고, 리시버도 일본산 외엔 접할 방법이 없었죠.

 

왜냐하면 그 시기는 워크맨이란 물건이 나온지 얼마 안됬었고, 일본외에 다른 나라들은 이런 물건을 만들어낼 공업기술력이 없다시피 했거든요.

 

유일하게 미국정도가 이런걸 만들 수 있었지만, 당시의 미국은 컴퓨터와 자동차를 만들기에 바빴고, 굳이 워크맨따위를 만드느니 컴퓨터와 자동차를 한대라도 더 만드는게 훨씬 더 돈이 됐죠.

 

전문적으로 취미라고 명명하여 포터블기기를 즐긴 사람들은 단순히 워크맨만 가지고 다닌게 아닌,

 

지금처럼 리시버나 헤드폰을 번들제품이 아닌 별매품을 사용해줘야 뭔가 전문적이어 보이는 스멜이 났는데,

 

당시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메이커가 없거나 이어폰을 만들지 않았었고,

 

이어폰이란건 원래 워크맨 사면 들어있는것이며, 고장나면 a/s센타에 가서 수리하거나 하나 사는 "부수적인 물건"이었어요.

 

접할 수 있는건 미국의 코스나 일본의 소니에서 나온 이어폰과 헤드폰이 전부였죠.

 

그나마도 코스는 거의 알려지지도 않았었고, 소니에서 별매품으로 좀 더 좋은 소리의 이어폰이 나온다는 걸 아는사람조차 드물었어요.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지금은 유명한 소니의 848,868,888중에 848과 888 두가지만 나왔었는데, 당연히 이름만 같고 지금 알려진 물건들과는 다른 녀석들이죠.

 

868은 지금의 이시리즈가 알려진 후에 추가된 모델로 알고 있네요.

 

이때 848을 어렵사리 구해서 들어보고는 충격을 받습니다.

 

원래 부속되 있었던 이어폰하고는 진짜로 거짓말 안하고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다른 소리가 나왔거든요.ㅎㅎ

 

후에 알고보니 이 초기형 848의 경우, 북미에서는 엄청난 명기로 인정받아서 나중에 절판된 후까지도 꽤 높은 프리미엄이 붙어서 거래되고 그러더군요.

 

이 당시의 초기형 888은 의외로 그다지 인정 못받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가격에 비해 소리는 별로였단거죠. 실제로 해외에서는 848보다도 오히려 낮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고 하구요.

 

우연한 기회에 외국 잡지를 보다가 두번째 충격을 받게 되죠.

 

뱅엔올룹슨의 a8이란 이어폰을 광고를 통해 보게된겁니다.

 

지금도 세련되고 멋있는 디자인인데 그 당시엔 어땠겠어요. 엄청난 충격이죠 당연히 ㅎㅎ

 

소리는 들어보지도 않고 디자인만 보고도 갖고 싶은건 당연지사. "나 이거 설래" 하고 몇달만에

 

신세계백화점 본점으로 향합니다. 당시 유일한 뱅엔올룹슨 구입처였거든요.

 

신세계 백화점 본점은 사실 가난한 사람들한텐 위압감을 주는 대단한 장소였지만

 

저는 이 백화점 지하에 있는 모형점엘 뻔질나게 드나들었기 때문에 별로 안 쫄았었어요.

 

뱅엔 올룹슨 매장에 도착하기 전까지는요.

 

말그대로 입점 초창기에 얼마나 브랜드를 밀고 싶었는지 아직까지도 그렇게 화려한 매장은 본적이 없습니다.

 

작정하고 만들었더군요.

 

반쯤 공황상태에서 워런티 카드와 고객명세서(?)를 작성하고, 물건을 받고 돈을 지불하려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a8이라는 외계인이 만든것 같은 이어폰이 6만원 밖에 안한다는 거에요. (이게 국내에 처음 팔릴때의 a8가격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848을 세운상가에서 10만원을 주고 샀었기 때문이죠.

 

나중에 알고보니 세운상가나 용산에서 팔던 일제 가전 제품의 가격은 거품에 바가지가 엄청났던 거더군요.

 

이때 구입한 a8은 지금도 쌩쌩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고무패드가 삭아서 만오천원인가주고 수리한거 외엔 20년 가깝게 잘 쓰고 있네요.

 

그 후에도 ue니 그라도니 울트라슨이니 수많은 값비싼 명품 이어폰헤드폰이 제 귀를 거쳐갔지만, 유일하게 지금가지 남은 놈은 이 a8 단 한개 뿐입니다.

 

포터블쪽에 나름 관심 좀 있다 하시는 분들은 거품만 심하고 소리도 별로인 a8을 왜... 하시겠지만,

 

이승환이나 이승철 같은 녹음 공연장비 덕후들이 a8을 애용하는 이유가 있어요.

 

적당히 오디오적 과장이나 착색을 해서 소리가 좋게 들리기도 하지만, 차음성이 상당히 떨어지기 때문에(?)

 

관객의 환호성을 모두 들을 수 있으면서도 중음역대는 가히 독보적이어서 떨어지는 차음때문에 주변소음에

 

내 목소리가 묻힌다던가 하질 않고 확실히 모니터링 사운드를 들을 수 있으면서도 밸런스가 좋아 다른 음을 묻히게

 

한다거나 하지 않아서 그야말로 모니터용으로는 최고의 이어폰이거든요.

 

한마디로 티비에 출연해서 자신의 노래에만 집중에서 무대를 소화하는 사람들은 차음성이 좋은 인이어타입을 많이들 쓰지만,

 

티비보다는 공연위주인 가수들은 관객의 반응이 중요하기 때문에 a8을 쓸수밖에 없지 않나 싶어요.

 

 

 

 

또~또~ 쓸데없이 길어졌네요.

본의 아니게 쓰다보니 점점 일기아닌 일기가 되어 죄송하다는 말씀 올리며, 좀 더 빠르게 마무리 지어야할것 같습니다.

 

 

 

 

일드는 a/v에 빠졌던 시절, 원래 다큐멘터리를 좋아하기도 했고,

 

일본의 다큐멘터리란게 자기들의 훌륭한 카메라기술을 과시할 수 있는 화질 좋은 다큐가 많아 자주 접하다보니

 

영상 테스트물로써 자연스럽게 일본 영상물을 접할 기회가 많아져 보기 시작했는데요.

 

아무래도 a/v하는 사람들은 사운드 테스트니 뭐니해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만 많이 보게되는데, (아니면 음악공연관련이나요)허구헌날 그런것만 보다보니,

 

정반대쪽에 위치한 스타일인 일본 드라마 특유의 작고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상당히 매력적이더군요.

 

거기다 얘네 영상물 많이 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 쇼프로같은게 아닌이상 배우들의 화장이 매우 현실적이고, 조명을 최소한으로만 사용해서 영상이 상당히 자연스러워요.

 

우리나라나 미국의 영상처럼 조명을 엄청나게 써서 엄청 화려하고 과하게 밝은 영상이 잘 없습니다.

 

전 이상하게 이런 점이 좋드라구요. 눈이 피로하지 않아서...

 

거기다, 인정하긴 배아프지만 원래 일본은 소설 강국이기도 하니 좋은 드라마 영화 소재는 많고,

 

얘네들은 부지런히 그것들을 영상화 하다보니 저도 점점 보는게 많아지고...

 

이건 확실히 자랑인데, 저 일본어 거의 네이티브 수준으로 알아듣고 조금 버벅대지만 대화도 가능합니다.

 

물론 드라마보고 배운거라 정확하다고는 말 못하겠고 읽고 쓰는건 전혀 안되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요새는 시간이 없어 거의 못보지만 일본드라마나 영화는 자막없이 시청 가능해요(아... 도데체 얼마나 많이 본거냐...)

 

 

 

 

 

게임도 했지만 전 여러게임을 섭렵하진 못했고,(저라고 남들보다 두배의 시간이 있는건 아니니까요. ㅎㅎ)

 

디아블로시리즈와 와우는 남들 했던 정도 했고, 특히나 빠져있었던 게임이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엔 매직이란 게임 이었습니다.

 

지금은 3대 악마의 게임이라고 알려져있지만, 사실 국내에서는 그다지 팬이 많지 않아 이 게임을 빼고 fm시리즈를 넣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북미가 시발점인 "3대 악마의 게임"의 원조는 디아블로와 문명, 그리고 이 게임이 맞는걸로 알고 있어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쨋든, 우연히 모 잡지의 별책부록에 데모버전이 실려있었던 이 시리즈의 첫 작품을 해보고는 겉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는데,

 

이 히어로즈1이란 게임이 지금봐도 상당히 어색할 정도로 양키센스가 엄청난 그래픽을 가지고 있어요.

 

예전에 유행했던 울티마 시리즈나 에버퀘스트나 다옥은 명함도 못 내밀 양키센스 그 자체였어요. 비주얼이.

 

하지만 그 마약같은 게임성은 절대 적응안되던 그 양키센스따위 아무런 장애물도 되지 못했고, 2편이 나왔을땐 하루에 16시간이상을 이게임을 붙잡고 있기도 했네요.

 

특히 2편의 경우 오케스트라와 오페라형식으로 구성된 ost가 상당히 훌륭했는데,

 

이는 지금도 팬들 사이에 회자될만큼 상당한 수준이었고, 지금 시각으로 봐도 음악 하나만큼은 그 어떤 게임에도 뒤지지 않아요.

 

그러니 가뜩이나 음악과 오디오의 팬이었던 저한텐 얼마나 큰 매력이었겠어요.

 

특히 이 게임의 정품 cd는 오디오에 넣으면 평범한 음악cd처럼 ost가 재생이 가능한 특이한 구조의 cd였는데 (cd의 용량 약 700메가중 게임은 200메가고 음악이 500메가 였음)

 

한 20시간 가까이 이 게임하다가 도저히 졸려서 안되겠어서 잘 때는 cd플레이어에 이 cd걸어놓고 게임음악 들으면서 잤네요 ㅎㅎ

 

고전 게임 좋아하시는 분은 지금도 구하기 어렵지 않으니 2나 3정돈 구해서 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거에요. 

 

개인적으론 음악이 쩔어주는 2편을 추천하지만 게임성은 3편이 훨씬 좋은 평가를 받았고, 대신 용량 문제로 음악의 비중은 좀 축소됐었죠.

 

이러고 살다보니 어느날인가 문득, "음?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지?"하는 생각이 또 들더군요. ㅋㅋ

 

그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나가서 몸을 움직이자~!" 고 생각하고 한다는 짓이 차가지고 나가서 밤길 달리기... 

 

 

 

얼마후에 엄청난 충격과 함께 등장한 그란투리스모 시리즈에 빠져서 또 한 동안 20시간씩 게임한건 비밀입니다. ㅎㅎ

 

 

와우야 남들 겪었던 일들 대충 다 겪었고 워낙에 유명한 사건들이 많아서 제가 따로 이야기 할필요도 없을거고,

 

그당시 가장 화두는 역시 레이드였는데, 와우 오리시절의 레이드는 솔직히 저한텐 오르지 못할 나무 였어요.

 

게임에서 만난 인맥이 쩔어줘야함은 물론이고, 거의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고 플레이해야 가능한 수준이 레이드 참가였다고 생각했는데,

 

전 그 당시 뭔 중2병인지 "게임에서 만난 인맥은 그다지 좋지 못한 인맥이고 유지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예전엔 자기도 20시간식 게임한 주제에 지금은 직장인이라는 핑계로 그 정도로 게임에 몰두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와우의 진짜 백미인 레이드는 거의 쉬고 복귀하고를 반복하던 중 출시되고 몇년이 지난 후인 대격변 시절에 처음 경험했네요.

 

 

 

아... 글이 너무 길어지니까 쓰는 저도 재미없는데 읽으시는 분들은 참 답 안나오겠어요. 고만 하죠...

 

좋은 하루 되시고, 항상 영감이 가득하시길~!

 

 

끄읏~!

 

 

 

이 줄도 마지막에 다시한번 추가한건데요, 글 다 쓰고 나니 학교 다니던 시절 어머니한테 점심 사먹을 돈 받아서

 

돈 아낀다고 거의 매일 사먹었던 김치 사발면 하나 편의점 가서 사왔는데 이게 800원이나 하네요.

 

그 당시엔 250원인가 했던거 같은데 시간이 많이 지나긴 지났나봅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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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정독하다 통독으로 바꿔서 읽었습니다 ^^;;
이렇게 긴 글을 쉽게 쓸만큼의 열정이 있으셨다면 상처와 패배는 아닌거 같아요.
시계 취미는 즐겁게만 남으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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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그러긴 틀린것 같아요. 오늘 아침도 방금 시계 하나 받았고, 비행기타고 하나 오고 있고, 미국 육로로 하나 배송중이고...
방금도 시계 하나 실컷 눈독들이다 왓네요...ㅠㅠ 아 나란놈 진짜 미친놈...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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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실감나게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걸 보면
진정 매순간 열정이 있었을 것 같아요.. 전 잘 기억을 못해요^^

저의 학창시절 학교식당 밥값이 500원 특식이 600원이었지요,그리고 국수는 200원^^
이렇게 시간은 세월이 되는가봅니다..

님의 이런 소중한  추억은 이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저에게 대리만족을 주는군요..

글 감사하구요,,
우리에게 또 다른 경험은 항상 현재진형행입니다~ 그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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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진행형이죠 맞습니다^^ 그래서 내일이 기대되고 오늘이 재미진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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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글 잘 보았습니다 1편본후에 좀 지나서 2~3편 보았는데 그시대의 추억이 떠오르네요 저는 부친께서 고2때 돌아가셨는데 중학교때 사주신 아이와 워크맨(모르시는 분들이 더 많으실 ㅎㅎ)이 제인생 처음의 플레이어였으며 아직도 그 추억만이 또렸이 기억 나네요
많은 취미들을 거치신거 같은데 이런게 바로 열심히 사는 이유중의 하나 아니겠습니까 만약 취미없이 그냥 살았다고 하면 의미도 추억도 감동도 없겠지요 색마님의 취미를 응원합니다
많이 좋은글과 시계들 올려주세요 보는것 만으로도 대리만족 하고 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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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감사합니다. 열심히는 산거 같지만 방향이 엉뚱한...ㅋㅋ
제가 구입하는 시계야 저려미 쿼츠들뿐인데 뭐 볼게 있나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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