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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제 SNS에 작성한 칼럼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므로 반말을 사용한 점 죄송합니다]
세계 4대 다이아몬드 중 하나인 45.5캐럿에 달하는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 인도에서 발견된 이 다이아몬드는 밤하늘의 부서진 파편으로 칭송될 만큼 아름답기로 유명하지만 소유주에게 불행과 죽음을 가져다 주는 보석으로도 유명하다. 어떤 사람은 이 보석을 인도의 어떤 힌두교 신전에 있는 시타(Sita) 여신상에서 훔쳐온 후부터 신의 저주가 소유자에게 내려지기 시작했다고 믿는다고 한다.
이 보석에 의해 처음 죽음을 맞은 사람은 '장 바티스트 타베르니에'이다. 그는 이 다이아몬드를 구입해서 유럽으로 가지고 온 보석상이며, 그는 여행 도중 들개에게 물려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죽기 전 그에게서 이 보석을 구입한 루이 14세는 다이아몬드 원석을 67.50캐럿으로 세공하였고, 이후 124년동안 프랑스 왕실의 보물로 여겨졌다. 그러나 루이 14세는 이 보석을 이용한 반지 를 착용한 후 천연두에 걸려 사망했며, 루이 15세와 듀발리 자작 부인 그리고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아네트가 참수를 당하면서부터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의 저주가 모두에게 사실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1792년 9월, 프랑스 왕실 보물 창고에 침입한 도둑에 의해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가 분실되게 된다. 1812년, 런던의 한 보석상이 44.5캐럿짜리 블루 다이아몬드를 시장에 내 놓았고,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분실된 황실의 보석이라 생각했지만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1830년, 헨리 필립호프는 런던 시장에서 이것을 구입하여 70년간 소장하였다. 그러나 그는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뉴욕의 보석상에게 이것을 팔게되고 얼마 있지않아 파산하고 만다. 또한 보세 매각을 담당하던 엘리어슨은 낙마로 사망했으며, 이후로조 보석 소유주들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가 죽은 후 그의 조카인 헨리 토마스 호프가 이 보석의 주인이 되었고, 이 때부터 이 보석은 '호프 (Hope)'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이곳 저곳 떠돌던 블루호프 다이아몬드는 1910년 페이르 카르티에에게 매매되었고, 그는 매클린 부부에게 이것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매클린 부인은 자신만큼은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그녀의 9살된 아들 빈슨은 보디가드의 눈을 피해 길을 뛰어 건너다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게 되며, 매클린 본인은 스캔들로 인해 부인과 이별후 정신 이상으로 요양소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또한 1947년에 매클린 부인의 딸은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그녀는 폐렴으로 사망하게 된다.
이후 해리 윈스턴이 1949년 이 다이아몬드를 구입하여 1953년까지 미국을 순회하며 전시하였고, 1958년 워싱턴에 위치햐 느미소니언 박물관에 기증하면서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의 저주가 끝이 난다.
그러나 스미소니안 박물관에서 1976년 발간한 <푸른 미스테리 - 호프 다이아몬드 이야기>란 정확하게 검증된 이 서적을 통해 '불길한 전설의 대부분은 기뢰이나 근거 없는 픽션'으로 판명되었다.
호프가 신상에 박혀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처음 소유자였던 '장 바티스트 티베르니에'는 들개에들개에 물려 죽지 않았으며, 84세까지 살다 생을 마감했다. 이 외에도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에 대하 많은 죽음들에 대한 사실 여부를 확인할 자료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모든 안좋은 전설은 대부분 피에르 카르티에가 만들어냈다고 여겨지는데, 그의 고객이였던 매클린 부인이 '불행을초래하는 물건이 내게는 반대로 행운을 가져다준다'라고 하는 애기를 들우 그가 그럴 듯하게 호프의 과거를 날조해 보석을 파는 데 성공했다는 주장이다.
사람들의 오해 속에 가려져 그 본연의 아름다움을 인정 받지 못했던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 지금 이 포스팅을 보고 계시는 여러분이라도 오해 대신 이 보석의 아름다움을 감상해주길 바란다.
세계 4대 다이아몬드 중 하나인 45.5캐럿에 달하는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 인도에서 발견된 이 다이아몬드는 밤하늘의 부서진 파편으로 칭송될 만큼 아름답기로 유명하지만 소유주에게 불행과 죽음을 가져다 주는 보석으로도 유명하다. 어떤 사람은 이 보석을 인도의 어떤 힌두교 신전에 있는 시타(Sita) 여신상에서 훔쳐온 후부터 신의 저주가 소유자에게 내려지기 시작했다고 믿는다고 한다.
이 보석에 의해 처음 죽음을 맞은 사람은 '장 바티스트 타베르니에'이다. 그는 이 다이아몬드를 구입해서 유럽으로 가지고 온 보석상이며, 그는 여행 도중 들개에게 물려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죽기 전 그에게서 이 보석을 구입한 루이 14세는 다이아몬드 원석을 67.50캐럿으로 세공하였고, 이후 124년동안 프랑스 왕실의 보물로 여겨졌다. 그러나 루이 14세는 이 보석을 이용한 반지 를 착용한 후 천연두에 걸려 사망했며, 루이 15세와 듀발리 자작 부인 그리고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아네트가 참수를 당하면서부터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의 저주가 모두에게 사실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1792년 9월, 프랑스 왕실 보물 창고에 침입한 도둑에 의해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가 분실되게 된다. 1812년, 런던의 한 보석상이 44.5캐럿짜리 블루 다이아몬드를 시장에 내 놓았고,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분실된 황실의 보석이라 생각했지만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1830년, 헨리 필립호프는 런던 시장에서 이것을 구입하여 70년간 소장하였다. 그러나 그는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뉴욕의 보석상에게 이것을 팔게되고 얼마 있지않아 파산하고 만다. 또한 보세 매각을 담당하던 엘리어슨은 낙마로 사망했으며, 이후로조 보석 소유주들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가 죽은 후 그의 조카인 헨리 토마스 호프가 이 보석의 주인이 되었고, 이 때부터 이 보석은 '호프 (Hope)'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이곳 저곳 떠돌던 블루호프 다이아몬드는 1910년 페이르 카르티에에게 매매되었고, 그는 매클린 부부에게 이것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매클린 부인은 자신만큼은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그녀의 9살된 아들 빈슨은 보디가드의 눈을 피해 길을 뛰어 건너다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게 되며, 매클린 본인은 스캔들로 인해 부인과 이별후 정신 이상으로 요양소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또한 1947년에 매클린 부인의 딸은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그녀는 폐렴으로 사망하게 된다.
이후 해리 윈스턴이 1949년 이 다이아몬드를 구입하여 1953년까지 미국을 순회하며 전시하였고, 1958년 워싱턴에 위치햐 느미소니언 박물관에 기증하면서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의 저주가 끝이 난다.
그러나 스미소니안 박물관에서 1976년 발간한 <푸른 미스테리 - 호프 다이아몬드 이야기>란 정확하게 검증된 이 서적을 통해 '불길한 전설의 대부분은 기뢰이나 근거 없는 픽션'으로 판명되었다.
호프가 신상에 박혀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처음 소유자였던 '장 바티스트 티베르니에'는 들개에들개에 물려 죽지 않았으며, 84세까지 살다 생을 마감했다. 이 외에도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에 대하 많은 죽음들에 대한 사실 여부를 확인할 자료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모든 안좋은 전설은 대부분 피에르 카르티에가 만들어냈다고 여겨지는데, 그의 고객이였던 매클린 부인이 '불행을초래하는 물건이 내게는 반대로 행운을 가져다준다'라고 하는 애기를 들우 그가 그럴 듯하게 호프의 과거를 날조해 보석을 파는 데 성공했다는 주장이다.
사람들의 오해 속에 가려져 그 본연의 아름다움을 인정 받지 못했던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 지금 이 포스팅을 보고 계시는 여러분이라도 오해 대신 이 보석의 아름다움을 감상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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