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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배신으로 눈물흘린 필리핀 독립전쟁
세계사 |
ues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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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06-25 23:11:59 조회: 2,864  /  추천: 0  /  반대: 0  /  댓글: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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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에서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필리핀 독립전쟁은 아예 알지도 못했던 전쟁으로 불리죠. 


곁다리로 새나가지만 한국전쟁을 왜 잊혀진 전쟁이라고 부르냐면

1. 2차대전과 베트남전쟁의 중간에 끼어 있습니다. 
2. 베트남 전쟁은 미국의 참전인원이 연인원 200만 명이었습니다. 
3. 베트남 전쟁은 TV로 미국 거실에 중계된 전쟁이었습니다. 
4. 베트남 전쟁은 미국내에서 찬반논란과 반전시위가 격렬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전쟁은 베트남전쟁의 그늘에 가려 잊혀진 전쟁이 되었습니다. 

어쨌든, 필리핀의 슬픈 독립투쟁에 대해 아주 간단하게 정리해봤습니다. 물론 저는 다른 역사학자의 자료를 정리해서 여러분에게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일 뿐입니다. 필리핀에 대해 큰 관심이 없더라도 이번 기회에 그들의 슬픈 독립투쟁을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장황한 이야기는 제 블로그에 정리해두었고 여기에서는 그림 위주로 알기 쉽게 요약정리해보겠습니다. 

필리핀 독립전쟁의 출발점은 필리핀과 상관이 없는, 지구 반대편 쿠바에서 시작됩니다. 
한 때 지구의 절반을 식민지로 두었던 스페인이 노쇠해지면서 거의 모든 나라가 독립했고 19세기 말에는 쿠바, 괌, 필리핀 정도만이 남았습니다. 

쿠바에서도 독립투쟁이 벌어졌고, 자신의 앞마당 카리브해안을 장악하고 싶었던 미국은 스페인을 상대로 1898년에 참전하게 됩니다. 이 그림은 쿠바의 산 후안 요새를 공격하는 미군입니다. 가장 가까운 병사들은 쿠바 독립군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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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을 밀어낸 미군은 괌을 잠깐 들린 후에 필리핀으로 가서 마닐라 만에 있던 스페인 해군을 전멸시킵니다. 오래 전의 무적함대가 아닌 종이배 함대였으니까요. 

마닐라만에 수장되고 있는 스페인 함대입니다. 어느 정도로 일방적이었느냐 하면... 스페인 함선이 10척 침몰한 반면에 미군은 단 한 명만 전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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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스페인의 필리핀 주둔군도 상대하기로 하고, 필리핀 원주민(창방패를 든 원주민이 아닙니다. 판교 재개발 전에는 판교 원주민이라고 불렀습니다)의 지원을 받기 위해 홍콩에 망명정부를 차린 아귀날도를 초청합니다. 

아귀날도에 대해 설명해야겠죠? 바로 이 사람입니다. 필리핀인처럼 보이지 않는데, 중국 혼혈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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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스페인을 상대하기 전인 1800년대 중반부터 중산지식인층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시작되었고 노동자계층이 무장세력 약 30,000명을 만들어 항쟁을 했습니다. 
지도자들을 처형했는데도 300년 동안의 식민지 역사를 끝내려는 이들의 투쟁은 대단했고 결국 스페인 총독은 아귀날도와 지도부가 홍콩에 망명할 수 있게 배려를 했습니다. 

아귀날도와 망명정부가 홍콩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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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육군 그리고 본토의 증원을 염려한 미국은 아귀날도를 초청해 스페인을 상대로 합동작전을 펼치자고 했고 아귀날도는 당연히 미국의 의중을 확인하려고 합니다. 

아귀날도 : 미국이 종전 후에 필리핀의 독립을 보장할 것인가요?
함장 우드 : 미국은 큰 나라입니다. 해외 식민지가 필요없습니다. 

파견군을 만난 아귀날도는 다시 확인합니다. 

파견군 장군 듀이 : 미국은 크다니까요. 지금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큽니다. 

그러나 마닐라 입성을 앞두고 미국의 배신 기미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미 스페인군은 필리핀을 포기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명예만 살려달라는 요청을 했고 미군은 불필요한 가상전투를 벌여 여기에 화답합니다. 

왜 배신이냐고요? 미군은 스페인을 위해 가상전투를 벌인 것이 아니라 마닐라를 자신들이 함락시키고 스페인의 항복을 받아낸 것으로 해야 아귀날도의 지분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여름을 지나 가을을 넘기는 휴전협상 테이블에 아귀날도를 위한 의자는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미국내에서 제국주의 기조가 강해지면서 맥킨리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태도를 바꾸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그들을 일본이나 독일에게서 보호하기 위해 미국이 주둔해야 한다고 했다가 대중의 지지를 얻어 "왜 우리가 필리핀을 포기해야 하느냐?"라며 합병을 떠들기 시작합니다. 

맥킨리 대통령이 세례를 통해 필리핀 민족을 미국의 시민으로 만든다는 풍자입니다. 
여기에는 지독한 인종차별이 숨어있는데, 뉴욕타임즈는 사설을 통해 "필리핀 민족은 유야기 수준이라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한다"라고 했었고 이 그림의 아기가 필리핀 민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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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당한 아귀날도는 미국을 상대로 무장투쟁을 선포하고 1899년 2월 4일에 마닐라의 미군을 공격하며 필리핀 독립전쟁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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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약한 무장으로는 미군을 상대할 수 없었고 참패를 당한 후에 쫓겨다니게 됩니다. 결국 정글에 숨어 게릴라전을 펼치게 되었죠.

맥킨리가 국민에게 바로 끝난다고 장담했던 유아기 아이를 상대로 한 전투는 무려 3년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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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들 사이에서는 필리핀 민족을 열등민족이라고 여기는 풍조가 만연했고 자신들이 피해를 입으면 악랄한 대학살로 보복했습니다. 

사마르섬에서 기습을 받아 48명이 죽자 지휘관이었던 제이콥 스미스 장군은 섬에 있는 모든 마을을 불사르고 마을 주민 중 10살이 넘는 모든 사람을 다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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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양심있는 반제국주의자들은 아래 기사처럼 크게 문제화시켰지만 이미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제국주의자들의 비호로 스미스는 군법회의에서 전역처분만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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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오랜 투쟁 끝에 아귀날도는 체포되었고 독립군에게 모두 투항하라는 명령을 합니다.  투항하는 필리핀 독립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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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은 독립전쟁 동안 2만명의 병사와 수십 만 명의 시민이 죽었고 미국은 전투, 질병, 사고로 6,000명의 사상자가 생겼습니다. 

필리핀은 미국의 식민지가 된 후에, 2차대전 발발과 거의 동시에 일본에 함락되면서 다시 일본의 식민지를 겪게 됩니다. 1944년 말에 미군이 탈환하지만 마닐라를 소개하던 일본군이 대학살을 자행하면서 10만 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2차대전 종전 다음 해에 결국 미국이 필리핀 독립을 승인합니다. 

이 그림은 미군이 필리핀 관리를 고문하는 장면입니다. 실제 사진도 있는데 그림으로 대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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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고문장치가 아니라 처형장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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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날도의 투쟁 그리고 미국의 시각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제 블로그  | http://blog.daum.net/…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요약한 것보다 훨씬 자세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PS. 아귀날도는 필리핀 5페소의 주인공입니다. 이 분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데, 필리핀 역사를 모르는 제가 판단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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