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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독일의 원자탄 개발에 대한 질문이 있었는데 이제야 자세한 배경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히틀러가 제 정신이었다면 Ho 18 폭격기가 원자탄을 미국본토에 투하하면서 세계역사가 완전히 뒤집혔겠죠.
전체 이야기는 (물리학 ㅡ.ㅡ) 복잡하고 지루해서 여기에는 아주 간단한 요약본만 가져오겠습니다.
1. 독일이 2~3년만 더 있었으면 원자탄을 개발했을까요?
개발 근처도 가지 못했습니다.
슈바베Swabia 원자로를 점령한 미군 과학자팀도 그냥 재미있다 정도의 반응이었을 정도로 뒤처져있었습니다. 독일 정부도 종전 때까지 원자탄에 대해 거의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미국이 원자탄을 개발한 사실에 경악했습니다.
원자로를 해체하는 미군인데, 뭔가를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소련의 손에 넘기지 않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흔히 알려진 것처럼 노르웨이 중수공장 폭파가 원자탄 개발의 발목을 잡지 않았습니다. 독일은 프로젝트 자체오류때문에 중수가 있던 없던 상관이 없었습니다.
어쨌든 영국은 독일의 원자탄 프로젝트를 막기 위해 중수공장을 여러차례 공격했습니다.
2. 독일이 원자탄 연구를 먼저 하지 않았나요?
그렇습니다. 연합국에 비해 비교도 안 되게 앞서 있었습니다. 1938년에 오토 한Otto Hahn이 세계최초로 원자를 나누면서 원자탄 개발의 길을 열었습니다.
3. 그런데 왜 먼저 개발하지 못했나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먼저 반 유대인 정책 때문에 세계최고의 두뇌들이 대거 망명하거나 연구직에서 쫓겨났는데 이 중에는 아인슈타인도 있었고, 오토 한의 연구를 이론으로 정리한 리제 마이트너Lise Meitner도 있었고 우라늄 235 추출의 열쇠인 기체확산의 대가 구스타프 헤르츠Gustav Hertz도 있었습니다.
말그대로 머리는 내버리고, 손발도 묶어버리니 연구가 크게 부진할 수 밖에요.
이들의 빈 자리를 정치과학자가 채웠고 (유대계가 정립한) 이론 물리학연구를 금시기하다보니 심지어 독일 원자탄 프로젝트의 리더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vner Heisenberg(사진)조차 SS의 심문을 받고 유대계 연구와 가능한 한 거리를 두겠다는 서약을 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프로젝트 팀의 중대한 착오도 결정적이었습니다. 원자탄에 필요한 농축 우라늄 양을 미국은 불과 45kg으로 예측한 반면에 독일팀은 1톤이라는 실현불가능한 양으로 계산했고 군수장관 슈페어Speer가 원자탄에 대한 기대를 접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원자탄이 아닌 방사능오염폭탄Dirty Bomb(원자로를 투하해서 방사능으로 오염시키는)까지 고려했지만 적대국 상공에서 떨어트릴 방법이 없었죠.
마지막으로 미국은 망명 과학자들에게서 독일의 원자탄 프로젝트에 대해 아주 상세한 정보를 얻고 맨하탄 프로젝트에 총력을 기울인 반면에 독일은 미국의 프로젝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제트엔진과 탄도미사일에 귀중한 과학자와 예산을 더 집중시켰습니다.
독일 원자탄 프로젝트팀이 점령지를 다니며 강연을 했을 정도이니 어느 정도로 프로젝트가 찬밥이었는 지를 알 수 있을 겁니다.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열성 나치당원이 아니었고 순수 과학자였기 때문에 원자탄 프로젝트에 대해 상당히 괴로워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우라늄 1톤이라고 오판한 것도 프로젝트를 지연시키기 위한 고의적인 실수라고 주장했는데 그건 하이젠베르크 자신만이 알 수 있습니다.
군수장관 슈페어와의 회담에서 적극적으로 지원을 이끌어내지 않은 것을 보면 어느 정도는 신빙성이 있습니다.
하이젠베르크? 왠지 친숙하죠? 명작 미드 브레이킹 배드 그 사람의 가명이기도 합니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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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숨은역사 재밌어요.. 나치의 그당시 첨단무기 같은 것 잘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UFO 스타일 비행기라던지 등등... 요런 내용 올려주세요..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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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도면상의 상상도에 불과합니다. 기회가 되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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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내용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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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던 내용이네요. 재미있는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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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탄 개발사를 보면 흥미 있는게, 독일의 원자탄 개발비밀문서가 누군가에 의해 연합국에 흘러 들어왔고, 이 정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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