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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유일한 여황제 무측천의 재조명.
  세계사 |
Leg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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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07-11 14:34:17 조회: 1,889  /  추천: 4  /  반대: 0  /  댓글: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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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까지만 해도
악독하고 음탕하다는 악평을 받아왔던 무측천..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는데요.

실제로 무측천 집권 당시는
당나라 태평성대를 이룩했던 태종, 현종 때
못지 않았다고 하네요.

인재육성에 관심이 많아서 당나라 역사상
궁에 인재들이 가장 많았던 때이고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했다합니다.

다만 보수적인 나라에서
여성황제라는 이유로 평가절하된 부분이 많았다더군요. 예를 들어 불교 건축물을 태종이나 현종이 세웠을 땐 불교융성에 힘썼다고 기록되어있지만 무측천의 경우엔 국고를 낭비했다고 기록되어있다더군요.

또, 가장 부정적으로 언급되는 부분은 무측천의 음탕함 인데, 아버지와 아들 2대에 걸쳐 왕의 여자가 되었다는 점도 그렇고.. 황제가 된 후 왕이 후궁들이듯 공개적으로 남자파트너를 거느렸다고 해요.

하지만, 당시 왕들이 수천명의 후궁을 거느리고 황후의 조카를 후궁으로 맞는 경우를 생각하면 그것을 음탕함으로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죠.

지금에와서야 무측천은 성군이었다고 평가받는다고 하네요. 업적으로는 다 늘어놓기 입아플 정도로 많다고 합니다.

왕위 역시 무 씨가 아닌 이 씨에게 돌려주고
죽기 직전에도 황제가 아닌 황후로서의 장례를 치뤄달라며 자신의 묘비에 한 글자도 쓰지말라고 유언을 남겼답니다.

지금와서 다양한 방면으로 재평가되니 재미있네요.

추천 4 반대 0

댓글목록

오.... 그렇군요

    0 0

좋은거 알아 갑니다.
그동안 영화에선....ㅎㅎ

    0 0

사기가 사기라는 말은 역사는 승자에 의해서 쓰여지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시대적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고 읽는 역사책은 독이라고 생각합니다

    0 0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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