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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돌이 골프 일지 - 오늘은 처음보는 사람들과 골프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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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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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09-08 09:45:04 조회: 1,392  /  추천: 12  /  반대: 0  /  댓글: 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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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부탁드립니다"

낮선 커플과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다. 

한껏 멋을 낸 중년 여성과 심드렁한 표정을 하고 있는 남자.

 

첫홀, 티샷 후 그녀의 공을 따라 러프로 다가가며 남자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내리막이 잖아!" "아니, 그게 아니고, 공을 중간에서 조금 오른쪽으로 두라고..."

 

아내로 보이는 분이 자신없다는 듯 세컨 샷을 한다. 아....뒷땅.

"아니, 그걸 왜 그렇게 치나?" "힘빼고 자연스럽게 치라니까..." 하며 핀잔을 늘어 놓으며 샷을 한 그의 볼은 핀 옆으로 다가간다.

 

그린 위에서도 그의 강의는 계속된다.

"팔을 옆구리에 붙이고 손목 꺽이지 않게 신경쓰면서 그냥 툭 쳐" 하지만 남자의 열정적인 레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볼은 홀 옆으로 당겨져 힘없이 흐르고 만다.

 

"아니, 당겼잖아. 그냥 이렇게 스윽 밀면 되는데 왜 그걸...."하며 퍼팅한 그의 볼은 홀로 빨려들어간다.

"나이스, 버디" 눈치 없이 한마디 했다가 그녀의 차가운 시선을 받는다.

 

이제 애들 다 키우고, 같은 취미 생활하며 금실 좋은 부부 소리 좀 듣겠다 싶었던 그들의 관계에 재앙이 찾아온건 험난하고 길었던 파5홀이 아닌 생각지도 않던 짧디 짧은 파3 홀이었다.

티샷한 그녀의 볼이 벙커로 들어가며 평생 해로하자던 그들의 약속 역시 거친 모래속으로 휘말렸다.

 

"자, 왼발에 힘 빡 주고, 하체는 움직이지 말고,공이 아니라 바로 뒤 모래를 치는 거야!" 그의 조언에 힘을 얻은 듯 힘차게 휘두른 그녀의 클럽은 공이 아닌 애꿎은 모래만 삽으로 퍼낸듯 그린 위로 모래를 양껏 퍼올렸다.

 

바로 코 앞에 떨어진 공에 당황한 그녀.

아직은 평정심을 잃지 않은 남자가 다시 레슨을 시작한다. "자자, 괜찮아. 다시 한번 해봐, 세게 칠 필요도 없어 그냥 공만 끝까지 보고 모래만 가볍게 쳐낸다고 생각해"

 

다시 자세를 바로 잡고 모래속으로 야무지게 발을 디딘 후 그녀의 클럽이 다시 한번 비상한다. 하지만 공은 모래밭을 뜨는가 싶더니 이내 벙커턱에 부딪친 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만다. 

"왜 이러지? 모래가 좀 젖었나?, 모래가 중국산인가?" 당황한 그녀는 애꿎은 모래탓을 한다. 

 

이글거리는 눈빛을 애써 감추며 다시 한번 차분히 레슨을 하는 남자.

"아니...왜 그걸...괜찮아, 이번엔 턱이 높으니까 클럽 페이스를 좀 닫고, 코킹을 빨리하라구, 자자 다시 쳐봐"

 

이번에는 기필코 탈출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박인비의 그 차분한 스윙을 생각하며 휘두른 그녀의 클럽은 새하얀 골프공의 뒤통수를 까며 허공을 가른다. 그리고 공은 세상 만사 귀찮다는 듯 모래속 깊은 곳으로 몸을 숨기고 만다.  

 

더는 못참겠다는 듯 남자가 침을 튀어 가며 목소리를 높인다.

"아니, 무슨 공을 그렇게 쳐? 어떻게 몇번을 말해줘도 말길을 못알아 듣냐고!", "아니, 연습장은 그동안 레슨 받으로 다닌거야 동네 여편네들이랑 노닥거리러 간거야?"

 

그렇지 않아도 민망함에 공 대신 벙커속으로 들어가고 싶던 그녀. 남자의 말에 돌변하며 눈을 치켜 세우고 남자를 노려본다. 클럽을 내동댕이 치며 벙커를 나온 여자는 남자에게 다가가 한을 풀듯 댓거리를 한다.

"당신은, 당신은 처음 부터 그렇게 잘 쳤냐? 엉?" "지 혼자 팔자 편하게 꼴같지않은 것들이랑 어울리며 공이나 치러 다녔으니까 그렇지, 솔직히 당신이 제대로 하는게 뭐가 있냐고!!"

 

이제 그들의 대화는 애들 성적이 누구를 닮아 신통치 않은지를 지나 시어머니가 왜 사사건건 간섭인지 그리고 지난 명절 왜 우리 부모님 용돈이 더 적어야 했었는지로 격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집에서 드라마 다시 보기로 구르미 그린 달빛의 박보검에 열광하고 있을 아내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끼며 조용히 다음 홀로 이동한다.  


추천 12 반대 0

댓글목록

에구 무슨 시추에이션이래요...
글읽는 내내 제가 민망하고 오글거리네요...
아....부끄러움은 나의 몫인가....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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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필력 좋으시네요... 저런 상황이면 어찌 대처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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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필력이 대단하십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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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난처하셨겠어요.ㅠ
저도 조인으로 몇번 라운드 해 봤는데요.
100% 다 불륜 이었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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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얘기가 생각나네요..
여자가 샷할때 남자가 옆에 서서'나이스 샷~~' 하면 불륜이고
카트에 앉아서 '뭐해!! 빨리 카트 타~' 하면 부부래요...ㅎㅎㅎ

    0 0

아... 그래서 저희 아버지가... 그러시는거군요...

어머니 샷할때 카트에서 심드렁하게 보시다가
빨리 타~ 밖에 안하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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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화이트티에서 티샷하고 레이디티로 이동하면 내리지도 않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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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전혀 안내리셔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해~ 어깨 힘좀 빼라니까~ 빨리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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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보는 카오산님의 멋진 글 잘봤습니다.
저도 와이프가 골프방송 보면서 '난 저거 재미 없어 보인다' 라고 했을때
아쉬움보다는 다행이다라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0 0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
속편은 언제 나오나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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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 상상이 됩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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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부부라는게 그런거죠 ㅎㅎ
아무리 환자들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저명한 정신과 의사도 자신의 와이프와는 대화가 잘 안된다고 하잖습니까 ㅎㅎ
오죽하면 생불같다던 간디, 자유와 평화, 인권을 부르짓던 넬슨 만델라도 이혼을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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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필력이 진짜 대단하십니다
예전 앞팀에 계신 한 부부의 장면을 보는거 같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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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과 출신이 분명하신듯.. 후속편도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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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ㅎㅎ
남자분은 프로네요
벙커샷도 다 다르게 치다니 ㄷ ㄷ 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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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읽고 있는데, 마치 영상이 보이는 듯한 착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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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소설읽는듯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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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 눈에 그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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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앞에서 보고 있는듯한 훌륭한 상황묘사에 큰재미를 느낍니다.
 그 남자분 멘탈도 훌륭하네요.
저 상황에 버디까지 낚으시고..
저는 큰맘먹고 와이프랑 스크린 가면.. 바로 멘탈 붕괴되어 타수는 안드로메다로..
진짜 속이 터져서 못보겠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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