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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라운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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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11-10 09:38:24 조회: 1,367  /  추천: 11  /  반대: 0  /  댓글: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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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다른 매체에 쓴 글입니다. 반말체는 양해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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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를 시작했다. 지난겨울 여러 가지 골치 아픈 일이 많았을 때 ‘건강이라도 챙겨야 한다’는 지인의 충고를 따른 것이다. 나로 말하자면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우선 내 몸부터 챙겨야 한다는 ‘보신주의’를 마치 모태 신앙처럼 여기는 사람이라 굳이 그 지인의 충고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뭔가 새로운 취미거리를 발견했을 터였다. 

 

우선 또 다른 나의 모태신앙인 ‘장비 우선주의’에 입각해서 멋있는 골프채와 주변 장비를 마련했다. 개인지도를 시작했는데 ‘빨리빨리 주의’라는 나의 또 다른 신조에 따라서 남들이 일주일씩 한다는 공을 때리지 않는 빈 스윙 연습과 공을 멀리 보내지 않고 코앞에 떨구는 ‘똑딱이’ 과정은 이틀 만에 마쳤다. 무슨 일을 할 때 ‘기초를 다지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한다. 

 

골프라는 운동이 결코 살을 빼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본인의 몸으로 증명해주는 나의 은사(티칭 프로)께서는 필드에서의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셨고 나는 골프채를 잡은 지 대략 3주 만에 par 3 골프장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나의 은사님과 동행자분께서는 내가 골프공을 땅으로 패대기치지 않고, 허공으로 띄워냈다는 것에 대해서 감탄과 찬사를 아끼지 않으셨다. 

 

그로부터 또 한 달 후 드디어 첫 라운딩을 할 기회가 생겼다. 이미 par 3 골프장 라운딩의 시행착오 결과 골프장에 갈려면 ‘자기 볼은 자기가 알아서 챙겨서 가야 한다 중요한 사실까지 깨우친 나는 정규 골프장을 가는 데 손색이 없는 골퍼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첫 라운딩을 할 때 주의해야 할 점’까지 숙지를 하는 치밀함을 발휘했다. 다만 한 가지 흠은 내가 드라이버를 쳐본 적이 없다는 점이 좀 마음에 좀 걸리긴 했다. 

 

그 문제도 전날 저녁 개인지도 프로에게 대략 5분간의 개인 지도를 통해서 해결했다. 나는 드라이버 치는 법도 알고, 골프장에 갈 때는 골프공을 준비해야 하는 것도 아는 몸이 되었다. 드디어 내 인생 첫 라운딩의 아침이 밝았다. 라운딩을 함께할 우리 조는 4명인데 그중 2명은 구력이 10년 이상이며 나와 한 동행자는 구력이 없다고 해야 맞는 처지다. 

 

라운딩을 시작하면서 나와 다른 초보 골퍼는 우리에겐 슈퍼 갑이라고 볼 수 있는 캐디님께 우리의 골프 경력과 실력을 가감 없이 실토했고 선처를 당부했다. 인자하신 캐디님께서는 ‘아무 걱정 마시고 편하게 하시라’며 우리를 격려해주었다. 첫 홀의 티샷을 준비했다. 저 멀리 아득한 페어웨이를 보니 공부를 하지 않은 수능 수험생의 신세가 절로 공감이 된다.

 

왼쪽에는 거대한 저수지가 있고 오른쪽엔 울창한 숲이 내 공을 잡아먹으려는 기세로 자리 잡고 있다. 또 페어웨이에도 벼룩의 간이라도 빼먹을 기세로 벙커라고 불리는 모래사장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출제자가 의도한 정확한 답을 알지 못해서 매력도가 높은 오답을 선택하는 수험생의 신세가 바로 나였다. 

 

‘아몰랑’이라고 외치고 복날에 목줄을 죄어가며 다리 아래로 끌려가는 개처럼 체념한 상태로 어제 처음 배운 긴 골프채(드라이버)를 휘둘렀다. 내가 친 공은 정확히 거대한 저수지를 향해 패트리엇 미사일처럼 용맹하게 향했고 잠시 뒤에는 ‘풍덩’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실력이 없는 것이 아니고 불운했다. 그리고 한국의 골프장 설계자들도 큰 문제다. 어찌 되었던 골퍼들을 살리는 쪽으로 가야 하지 어쩌자고 저수지나 산을 저토록 절묘한 위치에 배치한단 말인가? 나는 공을 똑바로 제대로 쳤는데 심성이 바르지 못한 골프장 설계자가 그 위치에 저수지를 조성했을 뿐이다. 어쨌든 서둘러 카트를 탔고 ‘해저드 티’라고 불리는 열등생을 위한 장소에서 두 번째 샷을 쳤다. 두 번째 샷에서 내가 친 것은 공이 아니고 불쌍한 잔디였다. 본능적으로 우리의 라운딩을 관장하시는 캐디님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저기요, 캐디님 한 번 더 쳐도 될까요?”라고 탄원을 했다. 내가 한 번 더 치기를 소원한 것은 내 성적 때문이 아니고, 티샷에서 230m를 날리시고 지평선 끝에서 나를 기다리는 고수 동행자에게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의 요청에 우리의 엄격하신 캐디님께서는 ‘쳐도 되냐고 묻지 말고 빨리 치시오’라는 엄명을 내리셨다. 구성원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조치를 좋아하시는 분이시다. 선조치 후보고를 하라는 캐디님의 명령을 하달 받은 나는 잽싸게 전방을 향해 포격을 가했다. 캐디님께서는 ‘돌격 앞으로’를 외치셨다. 다음 조가 우리를 바짝 추격하고 있단다. 캐디님은 노련한 중대장이었고 나는 고문관 졸병의 신세였다. 고지를 점령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우리를 추격하는 적(다음 조)에게 생포되지 않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씀하셨다. 

 

어릴 적에 과수원에서 사과를 몰래 따먹다가 주인한테 들켜서 고무신을 잃어버릴 정도로 정신없이 도망쳤던 기억이 떠오른다. 캐디님께서 우리 초보 2명에게 ‘뛰어라’고 명령하신다. 내가 왜 내 돈 내고 ‘도망을 다녀야 하나’는 회의가 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일단 명령대로 정신없이 치고 달렸다. 두 번째 홀에서는 티샷을 했는데 역시 거대한 저수지에 빠졌다. 그런데 확실히 첫 번째 홀보다는 나의 골프 실력이 향상되었음이 증명되었다. 처음 저수지에 빠졌을 때는 ‘풍덩’하는 굉음과 함께 속절없이 곧장 저수지 바닥으로 침몰했는데 이번엔 마치 수륙양용 전차처럼, 바다를 가른 모세처럼 저수지 물 위를 쏜살같이 치고 나아간다. 포물선이 아닌 직진성을 의미하는 드라이브의 용도에 맞는 샷을 한 것이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내 어릴 적 물수제비뜨기의 최고 기록이 물수제비 4개였는데 그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골프채라는 도구가 동원이 되긴 했지만 나는 2번째 홀에서 볼을 저수지로 보냈고 내가 보낸 볼은 무려 6개의 물수제비를 만들며 저수지를 돌파했다. 어찌 됐든 내 볼의 종착지는 저수지 바닥이었고 또다시 해저드 티라는 곳으로 끌려갔다. 마치 고향에 온 느낌이고 푸근해서 스윙은 부드러웠고 볼은 똑바로 앞으로 나아갔다. 

 

페어웨이의 목 좋은 곳에 있는 내 볼을 치려는데 웬 낯선 볼이 하나 보였다. 어떤 멍청이가 볼을 잃어버리고 그냥 간 것이 분명했다. 그 볼을 챙기기로 했다. 사실 나는 이미 금쪽같은 볼 서너 개를 골프장 저수지와 숲에 상납한 처지이며 그 수치는 현재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추세에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내가 주운 하나의 공은 나의 손실에 대한 ‘미진한 보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잠시 뒤에 내 뒤에서 누군가 투덜대는 소리가 들린다. 티샷에서 장타를 제대로 날리고 흐뭇해하던 동행자였다. 자기 볼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분명 자기 공은 똑바로 페어웨이 중간에 잘 떨어졌는데 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급기야 우리의 존엄하신 캐디님께 자기 볼을 빨리 찾으라고 닦달을 한다. 나쁜 예감은 적중하라고 있는 모양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바로 앞에 내가 ‘미진한 보상’이라고 생각하고 챙겼던 볼이 지금 저 인간이 그토록 애타게 찾는 ‘귀한 자식’임이 틀림없다. 어쩌자고 또 이런 실수를 했느냔 말이다. 자수하고 싶어도 광명이 아닌 큰 엄벌과 망신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 분명해서 못하겠다. 나는 ‘미진한 보상’을 혹시나 남의 눈에 뛸세라 호주머니 깊숙이 쑤셔 넣었다. 다행히 집 나간 자식(사실은 유괴된)을 찾지 못한 그 골퍼는 자신이 원하는 좋은 위치에서 다시 샷을 했고 자신이 원하는 위치에 볼을 보냈다. 

 

정상 멘탈을 회복한 그는 아빠 미소를 지으면서 내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내게 분홍색의 얄궂은 볼을 하나 쥐여주었다. 볼을 하나 주웠는데 색깔을 보아하니 여성 골퍼가 사용한 것이고 이 볼을 줄 터이니 ‘기’를 받아서 앞으로의 라운딩에 행운이 깃들기를 바란단다.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몽둥이를 든 주인에게 꼬리를 흔들더라는 개 이야기가 생각났다. 

SVfh_EPtl3Pr2AQxijtxSLDGwVY.jpg 


추천 11 반대 0

댓글목록

재밌네요 ㅋㅋ
2편 얼른 보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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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기회봐서 다른 글 올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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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력 굿~! 잘봤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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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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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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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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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직접 쓰신건가요?
피천득 선생님 같아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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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찬이시지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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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필력이 대단하세요.....
빨려들어가는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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