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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최후’ 기록한 류성룡 달력 일본에서 환수 / KBS 2022.11.24.
https://www.youtube.com/watch?v=J976MkHZpMo
이순신을 수군 지휘관으로 발탁했던 임진왜란 시기 명재상 서애 류성룡이 생전에 직접 사용했던 달력이 일본에서 돌아왔습니다. 생전에 무척이나 아꼈던 이순신의 최후를 묘사한 기록이 담겨 있어 더 주목됩니다. 김석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임진왜란 당시 조정의 중신으로 국난 극복에 힘을 쏟은 서애 류성룡.
1598년 탄핵을 받아 파직된 뒤 고향 안동에 내려가 머물던 1600년.
류성룡이 사용한 책력(冊曆), 즉 책자 형태의 달력입니다.
그해 24절기에 해당하는 날짜와 함께, 1월부터 12월까지 일별로 농사와 일상생활에 지침이 되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본문과 주변 여백엔 류성룡이 직접 쓴 글씨가 보입니다.
3월 퇴계 이황의 연보를 펴냈다, 6월 일본에 포로로 끌려갔던 선비 강항이 돌아왔다, 7월 중전께서 돌아가셨다 등 그해의 중요한 일들을 적어놨습니다.
오늘날의 다이어리와 같습니다.
그동안 문중에서도 행방을 몰랐던 이 유물은 올해 초 일본에서 그 존재가 확인돼 되찾아올 수 있었습니다.
[류창해/풍산 류씨 15대 종손 : "멀리 해외에 나가 있는 걸 찾아서 자손으로서 다시 이렇게 만날 수 있도록 해준 관계자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주목되는 건 사라지고 없는 원래 표지 대신에 이순신의 최후를 묘사한 기록이 붙어 있다는 점.
몸소 화살과 돌을 무릅쓰자 부장들이 진두지휘하는 걸 만류했지만, 직접 출전해 싸움을 독려하다가 날아온 탄환에 맞아 전사했다.
사료적 가치를 더해주는 결정적인 기록입니다.
[정제규/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상근전문위원 : '여해'라고 하는 (이순신의) 자(字)를 확인하고 또 그곳에서 이제 충무공의 전사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을 했을 때 그 느낌은 뭐 표현하기가 쉽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또 현재 류성룡 연보에는 없는 내용도 포함돼 있어 류성룡 연구에 귀중한 1차 자료로 평가됩니다.
"아! 이순신이 전사하다니"...류성룡 탄식 담긴 '대통력' 공개 / YTN
https://www.youtube.com/watch?v=PLKO6coVUqU
[앵커]
서애 류성룡의 '대통력', 요즘 말로 다이어리가 일본에서 환수돼 공개됐습니다.
1600년 경자년의 대통력이 발견된 건 처음인데, 이순신 장군 전사 소식을 들은 류성룡의 탄식 등이 담겨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됩니다.
이교준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문화재청이 공개한 경자년 '대통력'입니다.
오늘날 달력과 비슷한 것으로 총 16장의 여백 곳곳에 4백여 년 전 서애 류성룡의 친필로 추정되는 메모가 빼곡합니다.
류성룡이 쓴 징비록과 필적이 같은데 1600년 경자년 대통력은 처음입니다.
[정제규 / 문화재청 전문위원 : 지금 현재 종손가에 보관되어 있는 대통력이 여러 책이 있지만 1600년에 해당 되는 내용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일단은 유일본이 확인됐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임진왜란 당시 군사전략가로 활약하다 낙향한 류성룡 말년의 일상과 심경을 엿볼 수 있는데 특히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부분이 주목됩니다.
대통력에 매어놓은 임시 표지를 보면 이순신 장군의 전사 소식을 접한 류성룡의 비통한 심경이 생생하게 적혀 있습니다.
명재상의 손때 묻은 다이어리에는 일본에 주자학을 전한 강항의 귀국 등 당대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적지 않습니다.
그가 언급한 인물만 190여 명에 달하고, 유교 제례에 필요한 술 빚는 법도 상세하게 적혀 있습니다.
[최응천 / 문화재청장 : 류성룡 선생의 종손 가 소장 자료들인 보물 '유성룡 종가 문적'에 빠져 있던 새로운 자료를 발굴했다는 점에서 조선 시대 기록문화 유산의 연구와 활용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번 유물은 김문경 교토대 명예교수의 도움에 힘입어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일본 교토의 한 소장가에게서 사들여 지난 9월 국내에 들여올 수 있었습니다.
‘이순신의 최후’ 기록한 류성룡 달력 일본에서 환수 / KBS 2022.11.24.
https://www.youtube.com/watch?v=J976MkHZpMo
이순신을 수군 지휘관으로 발탁했던 임진왜란 시기 명재상 서애 류성룡이 생전에 직접 사용했던 달력이 일본에서 돌아왔습니다. 생전에 무척이나 아꼈던 이순신의 최후를 묘사한 기록이 담겨 있어 더 주목됩니다. 김석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임진왜란 당시 조정의 중신으로 국난 극복에 힘을 쏟은 서애 류성룡.
1598년 탄핵을 받아 파직된 뒤 고향 안동에 내려가 머물던 1600년.
류성룡이 사용한 책력(冊曆), 즉 책자 형태의 달력입니다.
그해 24절기에 해당하는 날짜와 함께, 1월부터 12월까지 일별로 농사와 일상생활에 지침이 되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본문과 주변 여백엔 류성룡이 직접 쓴 글씨가 보입니다.
3월 퇴계 이황의 연보를 펴냈다, 6월 일본에 포로로 끌려갔던 선비 강항이 돌아왔다, 7월 중전께서 돌아가셨다 등 그해의 중요한 일들을 적어놨습니다.
오늘날의 다이어리와 같습니다.
그동안 문중에서도 행방을 몰랐던 이 유물은 올해 초 일본에서 그 존재가 확인돼 되찾아올 수 있었습니다.
[류창해/풍산 류씨 15대 종손 : "멀리 해외에 나가 있는 걸 찾아서 자손으로서 다시 이렇게 만날 수 있도록 해준 관계자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주목되는 건 사라지고 없는 원래 표지 대신에 이순신의 최후를 묘사한 기록이 붙어 있다는 점.
몸소 화살과 돌을 무릅쓰자 부장들이 진두지휘하는 걸 만류했지만, 직접 출전해 싸움을 독려하다가 날아온 탄환에 맞아 전사했다.
사료적 가치를 더해주는 결정적인 기록입니다.
[정제규/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상근전문위원 : '여해'라고 하는 (이순신의) 자(字)를 확인하고 또 그곳에서 이제 충무공의 전사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을 했을 때 그 느낌은 뭐 표현하기가 쉽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또 현재 류성룡 연보에는 없는 내용도 포함돼 있어 류성룡 연구에 귀중한 1차 자료로 평가됩니다.
"아! 이순신이 전사하다니"...류성룡 탄식 담긴 '대통력' 공개 / YTN
https://www.youtube.com/watch?v=PLKO6coVUqU
[앵커]
서애 류성룡의 '대통력', 요즘 말로 다이어리가 일본에서 환수돼 공개됐습니다.
1600년 경자년의 대통력이 발견된 건 처음인데, 이순신 장군 전사 소식을 들은 류성룡의 탄식 등이 담겨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됩니다.
이교준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문화재청이 공개한 경자년 '대통력'입니다.
오늘날 달력과 비슷한 것으로 총 16장의 여백 곳곳에 4백여 년 전 서애 류성룡의 친필로 추정되는 메모가 빼곡합니다.
류성룡이 쓴 징비록과 필적이 같은데 1600년 경자년 대통력은 처음입니다.
[정제규 / 문화재청 전문위원 : 지금 현재 종손가에 보관되어 있는 대통력이 여러 책이 있지만 1600년에 해당 되는 내용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일단은 유일본이 확인됐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임진왜란 당시 군사전략가로 활약하다 낙향한 류성룡 말년의 일상과 심경을 엿볼 수 있는데 특히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부분이 주목됩니다.
대통력에 매어놓은 임시 표지를 보면 이순신 장군의 전사 소식을 접한 류성룡의 비통한 심경이 생생하게 적혀 있습니다.
명재상의 손때 묻은 다이어리에는 일본에 주자학을 전한 강항의 귀국 등 당대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적지 않습니다.
그가 언급한 인물만 190여 명에 달하고, 유교 제례에 필요한 술 빚는 법도 상세하게 적혀 있습니다.
[최응천 / 문화재청장 : 류성룡 선생의 종손 가 소장 자료들인 보물 '유성룡 종가 문적'에 빠져 있던 새로운 자료를 발굴했다는 점에서 조선 시대 기록문화 유산의 연구와 활용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번 유물은 김문경 교토대 명예교수의 도움에 힘입어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일본 교토의 한 소장가에게서 사들여 지난 9월 국내에 들여올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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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한 기록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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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 |